2008. 3. 22. 12:44

071209

본문 : 눅 10:25-37

목적

1) 대화 구조로 깨닫게 하시는 예수님(-관계하시기를 좋아하시는 모습-)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도 그렇게 대화하시고 계신다.

2) 강도 만난 사람에게 있던 사람들은 제사장, 레위 사람, 사마리아인이었다.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다. 사마리아인이 어떻게 하였는가?

3) 예수께서는 이런 사람이 바로 우리의 이웃이라고 이웃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않으셨다. 그 대신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가서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미 삶에서 답들을 가지고 있다. 그를 실천하여라.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성서를 읽기 전에)

오늘은 간단한 문제를 풀고 성경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파워스톰을 맞고 계신 전도사님의 성함이 무엇일까요?”

“교회 이름은 무엇일까요?”

“이웃은 영어로 무엇일까요?”

(성서를 다 읽은 후)

오늘의 설교의 제목은 마지막 절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가서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성경을 읽기 전에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을 했습니다. 질문에는 항상 답이 있습니다. 시험 문제에도 항상 답이 있듯 말입니다. 오늘 질문을 한 이유는 성경에서도 이렇게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질문에도 답이 있었습니다. 29절에 율법 교사는 예수님에게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율법교사(율법을 잘 아는 사람)에게 이웃이 누구인지, 사전처럼 정의해 주신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 이웃에게 무엇을 해야 할 지도 지시하신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에게 이웃은 어떤 것인지 설명하시면서, 이웃에게 해야 할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볼 내용입니다. 이웃이라는 말을 친구라고 생각해도 좋겠습니다.

나누어 드린 그림을 통하여, 오늘의 성경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화가 반 고흐를 들어 보셨나요? 숙제를 위하여 지난 금요일 시험을 마치고, 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고흐 그림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고흐가 그린 그림들은 단순히 ‘잘 그렸다’고 칭찬함과 동시에 고흐의 그림에 감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감명 받았던, 그림 중에 하나가 이 그림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 내용을 바탕으로 ‘들라크루아’라는 화가가 그린 ‘착한 사마리아인’을 따라서 고흐가 그린 그림입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의 도시 이름입니다. 사마리아인이라는 것은 사마리아 도시 출신의 사람을 뜻합니다. 말하자면, 서울인하면, 서울 사람과 같은 말 입니다. 사마리아 출신 사람들은 다른 도시의 사람들에게 무시 받았습니다. 율법을 어긴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에서는 다른 나라 사람을 이방인이라고 하는데,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 사람들과 결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림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은 누구일까요? 30절에 보면,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어떤 사람을 때려서 죽게 된 채로 버려두고 갔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과 여리고는 도시의 이름입니다. 인천에서 서울로 이동하던 길에 강도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여리고를 가는 길이 어땠을까요? 그림을 보고 말해 봅시다. 길은 구불 구불하고, 험한 산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지나다가,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하였다고 합니다. 제사장은 목사님과 같은 사람이고, 레위 사람은 그 당시에 하나님을 잘 믿던 민족의 사람입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림에서 어디에 있을까요?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을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그를 돌보고,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줍니다. 그림은 강도만난 사람을 도와주는 사마리아 사람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그림에서 보물 상자를 찾을 수 있을까요? 이는 강도당한 사람은 옷을 벗기고 때려서, 죽게 될 정도로 몸에 힘이 없었고, 보물 상자가 비어있는 것을 보아서, 돈도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은 두 데나리온을 주며, 강도 만난 사람을 더 돌보며,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겠다고 하였습니다. 데나리온이라는 것은 화폐의 단위로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라고 합니다. 두 데나리온은 16만원에서 20만원 정도의 돈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은 여관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지불하고, 더 필요한 만큼 그 사람을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을 위해 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사마리아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강도 만난 사람에게 해 주었습니다. 돈과 시간과 하룻밤동안 간호하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를 듣고, 율법 교사가 사마리아 사람을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 교사는 스스로 처음에 ‘누가 내 이웃입니까’ 묻고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이웃은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물음에 대하여 답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율법 교사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도와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다면, 왜 ‘누가 내 이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왜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했을까요? 이웃(친구)이(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사마리아 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였을까요? 앞에서 언급하였듯, 사마리아 출신은 율법을 어긴 민족으로 무시 받던 민족입니다. 그러므로 율법 교사는 율법을 잘 알고, 그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율법 교사는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는 말이 더 좋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떻게 말했느냐가 아니라,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부르는 것보다는 어떻게 행동하냐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율법 교사가 깨달은 바를 그대로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율법 교사는 율법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율법 교사는 제사장과 레위인을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 이미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율법을 어긴 사람으로 무시하고, 그러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질문을 한 이유는 29절이 나오듯,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입니다. 옳다는 것을 확인 받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는 잘 못 하고 있어 이렇게 꾸짖으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이야기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웃(친구)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좋은 이웃은 레위인, 제사장 아니라,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함께 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필요한 것을 해 주는 사람은 율법 교사도 말했듯, “자비를 베푼 사람이었습니다” . 자비는 (e[leo") 단순한 자비가 아니라, ‘적극적인’ 자비를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적극적으로 강도만난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을 모든 것을 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친구들을 대할 때, 율법 교사가 사람들을 대하듯, 선입견을 가지고 대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율법을 잘 지킬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은 율법을 어기는 나쁜 사람이다’ 이렇게 선입견으로 친구나 선생님 가족들을 대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함께 기억하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입견을 가지고 사람을 다하시기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한 우리의 이웃은 우리와 함께하는 모든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와 친하고, 나에게 잘 해주고, 나와 같은 학교, 교회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그림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등을 돌리고 있지는 않은가요?

저는 이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면서, 등 돌리고 있는 모습이 저의 모습 같았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살지? 저 사람은 이래서 싫어. 저 교수님은 왜 이런 걸 시키지? 등등.... 저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을 판단한 것이었습니다. 선입견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을 판단하였습니다. 등 돌린 그림을 등 돌리지 않은 모습으로 바꾸는 삶을 살고 싶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에게 그 전의 잘못을 질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깨달은 바를 실천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님은 잘못을 질책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저 오늘 깨달은 바를 실천하면 될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들은 질문에 대한 답들을 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에게 이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한 이웃은 어떤 존재였나요? 자비를 베푸는 사람. 즉, 필요한 것을 해주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할까요?

언제나 우리의 친구 되신 예수님.

우리를 질책하지 않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예수님.

우리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통하여 생각 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율법 교사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또 더 깊게 알아가는 파워스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고, 함께 했던

사마리아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는 파워스톰이 되게 인도해 주세요.

이제껏 우리의 이웃과 친구들 가족, 선생님 등 주변 사람들에게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00,00,00,00가 되고 싶습니다.

오늘 이 시간 각자 결심하고, 생각한 것들이 있다면,

지킬 수 있도록 인도해주세요.

또 결심하거나, 생각하지 못하였다면,

생각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우리에게 그렇게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Posted by 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