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3-6'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3.22 [070729] 99+1=1 100-1=1
2008. 3. 22. 12:34

070729

본문 : 마태복음 18:12-14, 누가복음 15:3-6

목적 : 목자를 쫓는 양의 마음과 양을 돌보는 목자의 마음 어떤 것인가?

하나님 나라는 양적인 것일까? 질적인 것일까?

아흔 아홉 마리를 두고 한 마리 양을 찾으러 갈 수 있는 목자의 마음은?

99+1=1 100-1=1

양을 본 적이 있었던 사람이 있나요? TV나 동물원이나 어디서든 보았던 사람이 있나요?

저는 양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이 성경과 가장 흡사한 지역에서 양을 보았던 경험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2005년 1월, 인도에 배낭여행을 갔었을 때, 히말라야 산맥의 한 줄기에서 양과 그 양을 키우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사진 제시)

이곳은 해발 1200M의 고지대로 산소가 부족하여,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찬 지역입니다. 고산병에 대하여 들어보았던 적 있나요? 저와 같이 여행을 했던 사람이 그 고산병에 걸려서 고생을 했을 정도로 높은 지대입니다. 참고로 한라산의 높이가 해발 1950M인데, 그것보다 낮은 곳의 지대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 합니다.

제가 보았을 때, 양들은 길이 아닌 곳 같은 곳을 가는데, 목동을 따라서 움직입니다. 또 한, 목동은 위험할 것 같은 상황을 만나면, 바로 그 길로 가지 못하게 이렇게 인도합니다. 참 높은 지대이기 때문에, 혹여 떨어지면, 바로 낭떠러지에 떨어집니다. 그런데 이 무리들이 움직이는 광경을 한 시간 정도 앉아서 보았는데, 그들이 움직인 것에 비하면, 아주 짧게 보았지만, 아주 안전하게 산을 넘어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양을 키우는 장소는 팔레스틴의 고원 지대입니다. 이 고지는 해발 5백 미터로 일단 양이 목자를 떠나 길을 잃어버리면 사고를 당하기 쉬운 곳입니다. 제가 인도에서 보았던 양이 이동하였던 장소들과 흡사한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팔레스틴의 목자(牧者)들은 저녁이 되면 우리(fold)로 몰아넣을 때 잃어버린 양이 있나 없나를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양떼를 세어 보았는데 만일 단 한 마리의 양이라도 없을 경우 목자는 그 양을 찾아 온 지역을 찾아 다녔다고 합니다.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비유를 통하여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양으로서, 또한 목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서 제가 양을 보았던 경험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양들은 목자를 무조건적으로 쫓아갑니다. 제가 보기에 길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길로 가는데, 양들은 그저 따라갑니다. 양을 돌보는 목자들은 양이 고지대에서 혹여 떨어질까 안전한 길로 인도합니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양과 목자의 조화는 환상이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렇게 환상적인 조화가 한 마리의 양이 길을 잃어버린다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합니다. 12절 초반에서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어떻게 생각하니?’입니다. ‘잃어버린다’의 본래 의미는 벗어나다, 파멸하다(막18:12, 눅 15:4)입니다. 양이 길을 ‘잃어버렸다’ 라기 보다는 양이 목자의 길을 쫓지 못하고, 혹은 양이 마음대로 그 길을 벗어나서 움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본문에서는 자신을 따라오지 않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를 볼 수 있습니다. 앞서서, 팔레스틴 목자들은 저녁이 되면 우리에 넣고, 양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고, 양이 없다면 양을 찾아 나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본분에 등장하는 목자는 12절 ‘산에 그대로 둔 채’ , 영어 성경에서는 pasture(방목하다)하고, 양을 찾아 나섰습니다.

아흔 아홉 마리 양을 어떻게 그대로 두고 떠날 수 있을까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보다 아흔 아홉 마리 양이 중요하지 않아서 일까요?

그래서 한 마리의 양만 안전하게 인도하고,

아흔 아홉 마리 양은 안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일까요?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 무리들은 산에 그대로 두어서, 풀어 놓아도, 길을 잃지 않고, 안전하게 있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그 인도를 벗어나지 않고, 따라왔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주었던 아흔 아홉 마리의 양들은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나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찾으러 갔을 때도, 목자가 만약 아흔 아홉 마리의 양들이 걱정이 되었다면, 잃어버린 양을 제대로 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들이 목자에게 주었던 믿음이 어떠한 가요?

잃어버린 양을 찾아나서는 목자의 마음을 생각해 봅시다. 목자는 목자의 인도대로 움직이지 않은 양을 찾아 나섭니다. 13절에 보면, ‘만일 찾으면’ 이라는 만일은 If의 가정형 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을 수도 있고, 찾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목자에게 있어서, 찾고, 찾지 못하고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마리 한 마리의 양 그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양을 향한 목자의 마음을 살필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은 자신이 보호해 주어야 할 양에 대한 마음이었습니다. 백 마리 중에 한 마리는 정말 작은 것입니다. 그러나 목자에게 있어 한 마리는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흔 아홉 마리보다 더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목자가 인도하는 길을 벗어나서, 헤매이고 있을 양의 생명입니다. 또한 자신이 생각하는 안전한 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찾고, 또 그렇게 인도하려 애쓸 것입니다. 그것이 목자의 마음입니다.

여기서 목자를 예수님이라고 생각하고, 양을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우리는 어떤 양의 모습을 하고 있나요? 앞서 보았듯, 목자에게 있어, 아흔 아홉 마리 양과 길을 벗어난 한 마리의 양은 모두 목자가 안전하게 돌보아야 하는 똑같은 양입니다. 그러나 목자는 안전하지 못한 양을 안전할 수 있게 찾아다니며, 안전하게 인도하려 합니다. 목자는 아흔 아홉 마리 양들에게 산에 안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두고 갔습니다. 아흔 아홉 마리 양들은 그 믿음으로 길을 벗어난 양들을 찾을 수 있게, 목자에게 도움을 줍니다. 이는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배려에 도움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길을 벗어난 한 마리의 양은 이 믿음을 발견할 수 있게 하면, 완전한 한 몸이 될 수 있게 돕습니다. 양 한 마리 한 마리는 목자에게 있어서는 똑같이 돌보는 양입니다. 이 모두는 한 몸이었습니다. 목자와 양 모두는 하나였습니다.

아흔 아홉 마리 양들의 모습처럼 목자에게 믿음을 심어 주느냐. 길을 벗어난 양의 모습으로 목자가 찾아야 할 더 안전한 길로 인도 받아야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예수님 앞에서 모두 똑같은 양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예수님의 마음을 살피는 것입니다. 목자가 양에 대해 생각하는 마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목자는 언제나 양의 안전으로 돌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작은 문제에서부터 큰 문제에 이르기까지 갈팡질팡 고민합니다. 아니면,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즐거운 생활을 합니다. 또한 그러한 즐거운 것들만 하고 싶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매우 당연합니다. 이러한 당연함 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들의 목자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늘 안전하게 인도하고 늘 돌보아 주심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혹여, 그 예수님의 힘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그 안전함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어서 힘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믿음을 주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이든, 길을 벗어나 안전하게 인도받아야 할 한 마리의 양이든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이 모두는 한 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모두는 목자의 인도함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이 비유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어떠한 양의 모습인가요? 이 질문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양의 모습이든지 우리 파워스톰 한 사람 한 사람들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길을 벗어난 양의 모습으로 방향을 찾지 못 하고 있다면, 어디선가 안전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하여 우리를 찾고 있을 그 목자를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친구나 주변 사람들이 길을 벗어난 양의 모습으로 힘겨워하는 한다면, 목자에게 믿음을 주었듯,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의 모습으로서, 우리는 그 친구나 주변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목자의 마음을 기억하며, 우리의 삶의 목자 되신 예수님을 늘 찾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우리를 늘 지켜주시는 예수님!!
오늘 우리는 목자의 인도함을 받는 양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어떤 양의 모습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되심을 늘 기억하는 양들이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인도하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여 우리들과 우리의 친구들이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그 길을 벗어난다면, 그 길에 갈 수 있도록 알게 하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예수님이 우리의 삶 속에 함께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의 작은 마음의 소리들도 기억하여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Posted by 은기